[2024年 8月] 저를 감당하세요. / .....

조회수 260

019b7d03713a2.jpg

(핀터레스트에서 웃긴 짤을 모아 보는데요. 저를 감당하세요, 에 무시(X) 혹은 싫어 라는 답밖에 없는 게 너무 웃겨요. 제가 가끔 저에게 하는 말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웃기니까, 이 글을 쓰는 현재의 하루도 딱딱한 텍스트에 가려져있지만 꽤 유쾌하게 넘어갔던 하루니까. 함께 공유해봅니다.)




최근 그림 하나둘을 덮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니었어요. 초벌 상태나 다름이 없었고 아쉬운 마음이 들 만큼 쏟아부은 것이 없어서. 그냥 고민 끝에 편지지의 첫 글자를 적었는데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과 함께 슥 지워버리고만. 편지지에는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뿌연 흑색이 번져있는. 그런 느낌 정도입니다.

처음 전시를 하자는 다짐과 딱히 정해진 날짜 없이 두루뭉술한 스스로만의 기한으로, 뒤돌아보니 꽤 오랜 시간 동안 같은 그림에 매진해 왔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고 조금이라도 정해둔 이미지에 벗어나면 뜯고 다시 천을 씌우고 짜서 바탕을 만들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5번 정도는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의미가 있기도 또 없기도 합니다. ("게다가 반복해서 다시 쓸 때마다 모든 것은 미묘하게 달라진 새로운 암시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므로, 매번 목소리는 글의 처음으로 돌아와 첫번째 문장부터 그것이 다르게 읽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단어나 문장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의 다시-쓰기는 고쳐-쓰기가 아니라고. 나는 마치 나 자신이 쓴 글을, 텍스트가 아니라 목소리를 바꾸어가며, 끊임없이 '나흐디시퉁'하고 있는 것 같다고." ) 첫 전시를 하기 전까진 할까 말까를 주욱 고민하고 망설였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준비하면서도 설렜고. 생각해 보니 모순에 관해 이야기하는 저는 모순 그 자체였습니다. 어쨌든 기쁘게도 값진 경험을 했고 그것이 불씨가 되어 지금 이렇게 희망적인 자세로 작업을 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머릿속에 맴도는 이미지, 그려놓은 이미지를 까먹을까 봐 작은 낙서처럼이라도 에스키스를 남겼고 나름의 계획을 짜서 물감의 건조속도를 확인해 가며 작업했습니다. 꽤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만족스럽게 일주일의 계획을 따라가기도 했고 늘 그렇듯 번번이 놓치기도 했습니다. 중간에는 많이 웃고 울만큼의 시간을 보냈고 여름의 뜨거움과 습함도 온전히 느꼈고 아쉬울 게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면서 현실을 느낍니다.

날카롭고 계산적이고 변수가 많은 현실을 마주하는 요즘입니다. 예전 두루뭉술한 스스로만의 기한으로 작업하던 때였더라면 여유를 만들고 미루고 합리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을 텐데 지금은 기한이 있어서 번아웃이 오는 시점도 쿨하게 무시해야만 합니다. 한두 번쯤 쉼 없이 자신을 통제하고 조여놓고 지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가끔 이렇게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것들도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하고 싶었던 것들, 기획했던 것들을 하나둘 포기해 가는 건 조금 슬프기도 해요. 쌓여가는 내 안의 좋지 못한 것들이 언제 커져서 자신을 괴롭힐지도 내심 걱정은 합니다.

작업실에 들어가면 웃다가도 웃지 않는데요. 행복한 감정을 밀어내고 흑색의 방에 앉습니다. 그렇다고 우울에 애써 빠지거나 그런 것은 아니에요. 그저 아무것도 없고 현재 놓인 이미지와 완성될 이미지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생각해 보니 이성적으로 작업을 하는 편인 것 같네요. 최근 그림 하나둘을 덮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니었어요. 초벌 상태나 다름이 없었고 아쉬운 마음이 들 만큼 쏟아부은 것이 없어서. 계획했던 달별 플랜은 엉성해졌지만 남은 달 동안 며칠은 잠을 줄여보면서 따라가면 되니까,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현실을 느낍니다. 채우기 위한 전시장의 도면을 펼쳐놓고 어느 위치에 어떻게 배치해서, 지금 얼마만큼 채웠는지를 계산합니다. 주문해야 할 재료들을 나열하고 가격을 옮겨 적고 계산하며 달에 쓸 수 있는 최대치를 계산합니다. '텅장'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계속 줄어만 가는 현재의 잔고가 꽤 걱정됩니다. 걱정되는 마음을 부여잡고 주문을 넣고, 로또를 샀습니다.

주문한 재료를 기다리며 덮어버린 저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다고 주문을 외우면서 지브리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혹은 원령공주가 떠오르는 음악을 틀어놓고(사실 의도적으로 선택해 듣는 건 아니지만. 디깅할 때 가끔 마음에 드는 썸네일을 보고 고르기도 하고 혹은 스포티파이의 추천, 그런 식이라서.) 글을 적고 있습니다. 어떤 글을 쓸까 어떤 이야기로 블로그를 다시 시작해볼까 고민하면서 그냥 두었던 블로그 창. 소심하게 비밀번호를 걸어두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비로소 오늘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글이나 영상을 올리고 읽고 시청한 여러분들의 댓글을 보는 건 즐겁습니다. 그림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많이 생각합니다. 그 생각으로, 또 오픈 포트폴리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사이트를 만들게 된 거지만요. 포기했던 옛것들 중에 이거 하나만은 (아마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 남아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생각해 보니 저는 고집있는 사람이었어.) 욕심내어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한켠에 미뤄두고 포기라는 문을 씌운 채 못 본 척 하는 것이겠지만.

낮에는 보통 불을 켜두고 있지 않습니다. 해가 구름에 가려졌다가 나왔다가 할 때마다 노트북의 밝기가 달라지고 드리운 햇빛과 그림자가 서로 교차하며 바쁘게 변화합니다. 변화하는 장면에 등장인물처럼 속해서 있는 기분이 들어요. 높은 피아노 음이 마구 교차하며 은은한 종소리 같은 소리와 함께 음악이 끝납니다. 창가에서는 빗소리가 서서히 들려옵니다. 가벼운 소나기 같아요. 다음 음악은 빗소리 같은 박자로 음이 나옵니다. 우연의 연속이 특별함을 주고 운명으로 여기게끔 한다는데.

8월은 남은 그림들과 덮어버린 그림을 그리며 반납 기한이 다가오는 책을 서둘러 읽고 다음의 책을 빌리러 가고, 늘 그렇듯 마음에 드는 옷들을 구경하며 셀렉하고 그 셀렉숍이 잘되길 바라 하며, 틈을 쪼개어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며 보내겠죠. 9-10월에는 자신을 지금보다 더 통제하고 조여가며 살아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항상 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잘 되었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마다 바쁘게 열심히 꾸준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당신께.

🍀

8 0
공백 없이 입력하세요.